2023년 3월 3일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가 공개되었습니다. 세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나는 신이다는 과거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던 끔찍했던 사이비종교 관련 범죄들이 다시 거론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 중 교주 박순자의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였습니다.
오대양은 무엇인가
오대양은 박순자가 1984년 5월 대전 서구 가수원동 에 설립한 회사이자 사이비 종교 공동체입니다. 오대양은 공예품 제작 회사로 지역에서 유명한 회사였습니다. 오대양에서 생산한 공예품으로 전국 경진대회에서 입상, 당시 대통령 전두환으로부터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물론 갈 곳 없는 고아와 노인들을 맡아 돌보는 사회사업으로 TV에 소개되기도 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명망이 있던 유명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공예품 생산 시설은 제대로 갖추지도 않았음은 물론 외부에서 수입한 물품을 사들여 상을 받은 것이라는 의혹이 무성한 수상한 회사였습니다. 고아와 노인들을 돌보는 사회사업이란 것도 사실은 오대양 사이비 종교공동체 신도들의 자식을 마치 고아처럼 위장하고 노인들도 신도들의 가족들을 그럴 듯이 포장해 TV방송에 까지 출연한 것이 실상이었습니다.
고아로 위장된 신도의 자식들에게는 부모를 부모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회사 직함으로 (김 과장님, 박 대리님) 부르도록 강요하고 일명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는 이름하에 한달에 한차레 신도들 서로 구타를 시키며 심지어 자식이 부모를 때리도록 종용하기도 하는 등 상식적이지 않은 질서가 지배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외출도 일주일에 한번 허락된 시간 안에 단체로 다녀와야 했으며 시설로 복귀한 후에는 외출한 내역을 서로 보고토록 하는 등 고도로 통제된 분위기의 집단생활시설이었던 것입니다.
교주 박순자는 누구인가
박순자(여성, 1936년생)는 1974년 신이 역사하여 자신의 횡격막 질병이 나았으며 자신은 신의 부름을 받았기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섰다고 주장합니다. 일명 기독교복음침례회 (유병언의 구원파)에 다닌 적이 있으며 구원파에서 자신을 따르는 일당들을 데리고 나와 1984년(당시 박순자 나이 48세) 오대양을 만들었습니다. 박순자의 남편은 충청남도 건설국장으로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유력 인사였고 이러한 배경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 부터 쉽게 신뢰를 얻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고리의 사체를 빌릴 수 있었다 합니다. (2부, 심지어 4부의 이자로 돈을 빌렸으며 이자도 꼬박꼬박 잘 지급하였습니다)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 개요
1984년 5월 박순자는 종교공동체이자 회사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대외적으로 공예품 제작 회사로 알려지게 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명망이 높아지자 사채를 빌리기 시작해 수십 명의 채권자로부터 빌린 금액은 최종적으로 11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삼우트레이딩 (세모의 전신)과 거래한 흔적이 있었으며 삼우트레이딩에 4억 6척 만원을 건넨 사실이 훗날 법원에서 인정되었습니다.
1987년 8월 16일 오대양의 신도인 자들이 오대양에게 바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거짓말로 자신들의 부모를 속여 무려 5억원이란 거금을 오대양에게 갖다 바친 일이 있었고 후에 그 사실을 알게된 부모들이 돈을 돌려받고자 오대양 부지로 찾아왔으나 오히려 박순자는 그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다른 신도들을 시켜 무참히 폭행 후 채무 포기 각서를 작성토록 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신도의 부모들은 경찰에 오대양 일당을 고소하였고 지역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 오대양과 채무관계에 있던 다른 이들까지 오대양을 고소하면서 오대양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가게 되었습니다.
1987년 8월 24일 ~ 8월 25일 박순자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자신을 취재하기 위한 방송사 카메라가 들이닥치자 졸도하였고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그대로 도주하였습니다. 박순자 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80여 명(당시 TV뉴스 보도에서는 150여 명)과 함께 행방이 묘연 해진 것입니다.
1987년 8월 25일 박순자는 봉고차를 타고 경기도 용인 삼인동의 오대양 공장 부지에 신도들과 도착합니다. 그날은 박순자는 공장 바닥에서 신도들과 하루를 보냅니다.
1987년 8월 26일신도들 중 자신에게 많은 돈을 바친 신도들만을 골라(사망 신도들의 채무액 합계 47억원) 자신과 함께 공장의 천장에 올라가도록 하고(박순자 포함 32명, 남자 4명, 여자 28명, 그중 박순자의 아들딸 3명) 나머지 신도들은 공장 창고 안 구석 공간에 숨어있도록 했습니다.
천장은 사람이 서있기 힘든 높이에 32명이 앉아있을 수는 있으나 전원 누울 수는 없을 정도로 협소했습니다. 통풍도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1987년 8월 28일경찰은 박순자가 공장 구석에 숨긴 아이들 포함 49명을 찾아내어 귀가조치 했습니다.
1987년 8월 29일천장에 올라가 있는 32명을 위해 하루에 한 번 오전 8시 주먹밥을 해다 올려주던 오대양 신자중 한명이 박순자 포함 32명이 전원 사망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때마침 찾아온 박순자의 남편에게 알려 곧 경찰이 출동하게 됩니다.
사건일 즈음 사건의 키를 쥐고 있다고 추정되는 오대양 총무과장 노 모씨 등 3명이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암매장되었습니다.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
박순자가 과다한 채무 등으로 어려운 상태에 봉착하여 죽음을 결의하자 박순자를 정신적 지주로 신봉하는 신자들 또한 죽음을 결의하였고 종교적 광신 상태에서 벌어진 집단 자살로 발표합니다.
박순자가 남성 신도 이 모 씨에게 시켜 자신을 최초로 목을 졸라 죽이도록 한 후 나머지 30명을 차례로 목을 졸라 죽이도록 하고 최후에 이모씨 자신이 목을 메어 죽도록 한 것이라 발표하였습니다. 박순자로부터 전원 사망까지 걸린 시간은 10시간이 걸렸다 발표 하였습니다.
1991년 7월 11일오대양 총무과장 노 모씨 등 3명 살해범 6명이 경찰에 자수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현직 경찰을 데려다 1년간 자수 연습을 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주로 자신들은 구원파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을 주장하기 위함 으로써 진술내용 녹음, 반복연습, 유도심문에 대한 진술요령, 집단 변사 무관주장을 교육 받고 경찰에 자수를 하였습니다. 한편 구원파는 이들은 구원파가 아니라 전 신도일 뿐이라 항변하였습니다.
나는 신이다 오대양 편에서 제기하는 의혹들
1. 외부 타살 의혹 주장
박순자 포함 모든 신도들, 심지어 모든 신도들을 죽이고 마지막에 스스로 목을 메어 죽었다는 이모의 목에까지 타살의 증거로 거론되는 일주흔이 발견되었다는 점 (목에 줄을 한 바퀴 돌려 목 뒤를 포함한 목전체가 졸린 흔적)
31명을 모두 손수 죽이는 것은 너무 힘이 들고 시간적으로도 많이 걸렸을 것이다는 점
교주 박순자가 다른 신자들의 죽음을 지켜보지 않고 최초로 사망하였으며 박순자의 머리에서 외부 타격으로 인한 두 피하출혈이 발견되었다는점
사체가 두 그룹으로 장작 쌓듯 포개어져 있던 점(이 씨가 일일이 죽인 사람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는 뜻)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 타살 의혹에 대한 반박
생활하기 위한 물품들(소변이 들어있던 통, 물컵, 라면박스들)이 놓여있던 점
경찰들이 사체를 내릴 때조차 너무 힘들었는데 외부에서 죽인 후 공장 천장으로 올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2. 구원파 유병원과의 관계
과거 유병언의 통역 비서로 있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유병언은 헌금으로 모으는 금액보다 더욱 큰 금액을 모으기 위한 목적으로 부도 직전의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한 후 전국 주요 도시에 자신의 사람들을 파견하여 사채를 끌어들여 돈을 모아 삼우트레이딩으로 보내도록 했고 그 중 대전지역 책임자가 박순자였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유병언에게 보내지는 그러한 돈들은 통칭 ‘개발비’라 불렸는데 개발비 운운하는 메모, 그리고 유병언 설교집이 현장에서 발견된 것 또한 오대양이 구원파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로 제시하였습니다.
훗날 법정에서 인정된 박순자가 삼우트레이딩에게 보낸 금액은 최종적으로 4억 6천만원입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오대양 사건은 다른 사이비종교 사건과는 달리 오대양 최종 책임자인 교주 박순자와 그 자식들까지 사망한 채로 발견됨으로써 사건의 진실은 밝히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오대양편에서도 최종 수사 결과를 두고 자살인지 외부 세력이 개입한 타살인지 의혹만 다루었을 뿐 속 시원한 결론을 밝힐 순 없었습니다. 배후 관련자로 지목된 유병언마저 2014년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어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댓글